"자신감 회복" 일본 스포츠정책의 변화와 도코올림픽
지난 23일 개막한 도쿄 올림픽. 코로나에 개회식 기획자 사임 등 각종 구설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황이나 경기 일정은 어찌어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돈의 논리’ 외에는 개최해야 할 이유를 딱히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 국민들의 반대도 높은 건 여전하다. 다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패럴림픽까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선수들의 초반 페이스가 좋은 점도 여론에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이번 글에서는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스포츠 정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확인하려고 한다. 항간에서는 ‘생활체육강자’ 이미지가 강한 일본에서 다양한 선수들의 선전이 잇따르는 데 대해 놀라움을 표하기도 한다. 일본 대표선수들은 유도뿐만 아니라, 수영과 스케이트보드, 소프트볼, 탁구 등에서 선전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일본은 금메달 9개를 땄고, 2012년(런던)에는 7개, 2016년에는 12개를 획득했다(일본올림픽위원회 홈페이지). 이번 대회에서는 30개 이상을 노린다고 하니, 가라테 정식 종목 추가나 홈 어드밴티지 외에도 상당히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비교하며 '엘리트 스포츠' 투자 나선 일본

이 같은 일본 스포츠 성장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중요한 점은 2010년대 이후 일본 정부가 정책적으로 스포츠를 투자 분야로 보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 출발점은 코로나 이전 도쿄올림픽 당초의 슬로건이었던 ‘재해로부터의 부흥’에 있었다. 민주당 정권이 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격려를 목표로 삼은 뒤, 2012년 12월 정권교체에 성공한 아베 정권이 이를 확대 계승한 것이다. 올림픽 유치도 실제로는 아베 정권이 독자적으로 추진했다기보다 지자체(특히 이시하라 신타로가 중심이 됐던 도쿄도)와 전임정권의 과업을 이어받은 결과물이었다. 시작은 대지진이 있던 2011년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이다.

2006년에 열린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 1개(피겨의 아라카와 시즈카)만 따는 수모를 겪는다. 은, 동메달을 딴 선수는 없었다. 4년전에도 은1, 동1의 성적이었다. 일본 스포츠의 부진에 먼저 위기감을 느낀 건 자민당 의원들이었다. 2007년 8월, 문부과학성 부대신(부장관)이었던 엔도 토시아키 중심으로 ‘스포츠 입국(立國) 일본~국가 전략으로서의 톱 스포츠’라는 이름의 보고서가 발표된다.

해당 보고서에서 흥미로운 건 발표 취지에 한국이 언급됐다는 점이다. 즉 ‘G8에 한국을 합친 9개국 가운데 (일본의) 올림픽 메달획득수가 최저’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당시 한국의 선전이 일본을 자극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엔도의 움직임에 뜻을 같이 하는 여야 의원들이 모여 같은 해 11월 ‘신 스포츠진흥법 제정 프로젝트팀’이 출범한다. 목표는 1961년 이래 큰 틀이 유지돼 왔던 기존의 ‘스포츠진흥법’을 대체하는 데 모였다. 특히 ‘국가 주도’의 스포츠 정책 필요성이 논의됐다.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즐기는 스포츠(학교/생활체육)는 과거와 같이 지원하되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에도 힘을 쏟자는 얘기였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직전인 2009년 5월, 해당 모임은 ‘스포츠기본법에 관한 논점 정리’를 발표한다. 주요 취지로는 ‘스포츠를 통한 일본의 국제공헌 및 국제사회 참가’가 포함돼 있다. 해당 논점 정리에는 그동안의 일본 정부 ‘스포츠관’ 전환을 의미하는 내용이 있었다. 즉 ‘하는 스포츠’, 이른바 생활체육 외에 ‘보는 스포츠’, ‘(사회를) 지탱하는 스포츠’가 들어간 점이다. 이를 위해 법률 제정과 함께 ‘스포츠 기본계획’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지도자 양성’, ‘시설 정비’, ‘우수한 선수 육성’, ‘국제경기대회 개회지원’, ‘프로스포츠 선수 등의 활용’, ‘기업 스포츠활동 활성화, 스포츠산업과의 연계’ 등이 거론됐다. 당시까지 일본의 주된 방침이었던 생활체육에서 국가 주도로 보는 스포츠와 단합을 위한 스포츠를 키우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특히 재정지원을 아끼지 말 것도 주문했다. ‘엘리트 체육’ 중시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자민당이 법률안을 주도할 만한 능력을 잃은 상황이라, 초당파 모임이었음에도 법안 제정에는 이르지 못한다. 2009년 9월 정권 교체 뒤에 열린 국회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과 공명당은 다시금 해당 법안을 제출한다. 흥미로운 건 당시 대표발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올해 성차별 발언으로 올림픽조직위원회를 사임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라는 점이다.

2010년 8월, 간 나오토 정권(민주당) 하에서 문부과학성은 ‘스포츠입국전략’을 발표한다. 여기서도 앞서 언급한 ‘보는’, ‘지탱하는’ 스포츠가 중시됐고, 한편으로 ‘세계에서 경쟁하는 톱 애슬릿’이란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현재 일본의 방침을 정리해 놓은 듯한 내용들이 다수 들어갔다. ‘세계 강호국에 버금가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주니어부터 톱 레벨에 이르는 체계적인 강화체제를 구축한다’, ‘향후 하계·동계 경기대회에서 사상최다를 넘어서는 메달 획득을 목표로 한다’, ‘올림픽경기대회 및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사상최다를 넘어서는 입상자를 목표로 한다’, ‘장래를 내다보는 중장기적인 강화·육성전략 추진 관점에서 주니어 선수권대회 메달 획득의 대폭 증가를 목표로 한다’, ‘톱 애슬릿이 주니어기부터 은퇴후까지 안심하며 경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한다’, ‘국제경기대회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 개최해 경기력 향상을 포함한 스포츠 진행, 지역활성화를 꾀한다’.

물론 이 밖에 생활체육 장려와 같은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나, 방향성은 ‘국가에 의한 엘리트스포츠 장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다만 이 시점에는 명확하게 엘리트 스포츠를 장려할 ‘명목’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민주당은 독자적으로 조직한 의원연맹을 중심으로 의견을 청취해 2011년 5월 야당안도 고려한 ‘스포츠기본법’안을 내놓는다. 이 때는 두 달전 막대한 피해를 낳은 동일본대지진(3월 11일)으로 일본 전체가 실의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해당 법안은 큰 반대 없이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을 각각 6월에 통과한다. 엘리트 체육 지원에 대한 명확한 명분, 즉 재해로부터의 ‘국민들의 사기 고취’가 생겨난 것이다.

 

'스포츠기본법'으로 국가전략으로 부상

여기에 법안 통과와 같은 달 열린 여자월드컵은 스포츠의 의미를 ‘부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일본 여자축구대표팀은 ‘나데시코 재팬’으로 불렸는데, 여기서 나데시코는 ‘패랭이꽃’을 의미하며 일본여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런 나데시코 재팬의 독일 여자월드컵 우승은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당시 간 정권은 스포츠의 가치를 재발견해 적극적으로 부흥과 스포츠를 연계시키기 시작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에게 우승한 다음달 이례적으로 ‘국민영예상’을 수여하며 “재난을 겪은 사람들과 모든 국민들에게 어려움에 맞서는 용기와 감동을 줬다”며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의 IMF 직후 주목받은 스포츠 스타들(박찬호, 박세리 등)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성립된 ‘스포츠기본법’ 전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포함됐다. ‘국제경기대회에서 일본인선수의 활약은 국민에게 자랑스러움과 기쁨, 꿈과 감동을 주고 국민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이를 통해 스포츠는 우리 사회에 활력을 만들어내고, 국민경제 발전에 폭넓게 기여한다’, ‘스포츠입국의 실현을 목표로 해 국가전략으로서 스포츠에 관한 시책을 종합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 법률을 제정한다’. 스포츠는 더 이상 개인이 즐기는 게 아니라 ‘국가전략’이 됐다는 사실을 천명한 셈이다. 특히 국가가 ‘법제상, 재정상, 세제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명문화됐다.

참고로 해당 법안과 직접적 관련은 없으나 비슷한 시기(2008년) 시설을 새롭게 바꾼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NTC)’도 도쿄도 내에서 개장한다. 식품기업 아지노모토 지원으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해, 2012년 6월 패럴림픽 대표팀이 처음 사용한다. 합숙시설이나 각종 실내외 경기장이 갖춰져 있는 곳이다. 특히 최근에는 선수들이 코로나로 방해받지 않도록 최대한 시설을 갖췄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늘 문제시되어온(되고 있는) ‘행정조직 권한의 분산’을 극복해야할 과제로 제시했다. 즉 스포츠 정책에 관해 몇 개 부처에 권한과 역할이 복잡하게 뒤얽힌 걸 폐단으로 지적하고 ‘스포츠 행정기관 창립’을 주문했다. 이는 더욱 노골적으로 스포츠와 국가의 관계를 활용하려 했던 아베정권기에서 현실화한다. 2015년 10월 ‘스포츠청’이 문부과학성 산하에 하나의 관청으로 독립해 탄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예산도 크게 늘었다. 스포츠청이 생기기 전인 2014년 선수들의 ‘경기력향상사업’에 사용된 예산은 40억엔대였으나 지난해에는 100억엔대로 2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아사히신문 2019년 3월 15일 등 종합). 2016년에는 금메달 상금(일본올림픽위원회 지급)이 기존 300만엔에서 500만멘으로 높여졌다.

또한 극우 인사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2006년부터 ‘국위발양(国威発揚)’을 이유로 추진하다 좌절을 거듭하던 도쿄 올림픽 구상도 구체화됐다. 도쿄는 원래 2016년 올림픽을 목표로 했지만 2009년 IOC투표에서 큰 표차로 좌절을 맛본다. 이후 2011년 민주당 정권하에서도 이시하라는 2020년 올림픽 후보에 재도전한다. 이듬해 도지사는 교체됐지만 올림픽 구상에 꽂힌 아베 정권의 적극적 지원으로 구상이 실현된다. 2013년 9월 아베 총리 등이 참석한 IOC 투표장에서 도쿄가 최종 확정된 것이다. 이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국내외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아베가 한 ‘언더 컨트롤’이란 발언이 크게 회자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이 한층 더 ‘부흥의 상징’이 아닐 수 없게 된 셈이다.

'국가 부흥' 아베의 승부수, 코로나로 빛바래

이같이 아베 정권하에서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이 ‘빛을 발한’ 또 하나의 경기 종목이 럭비다. 일본이 2015년 영국 럭비월드컵에서 강호 남아공을 꺾는 대이변을 연출하면서 일본 사회의 큰 관심을 모은다. 럭비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주목을 받고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하게 된다. 참고로 럭비 대표팀은 국적 조건이 다른 종목에 비해 까다롭지 않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한국 선수(구지원)나 다양한 국적 선수들이 ‘원 팀’의 일원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구 선수는 현재 일본으로 국적을 바꿨다).

일본은 2019년 럭비월드컵을 유치해 다시 한번 붐을 이어간다. 당초 스포츠기본법을 만들 당시의 ‘보는 스포츠’, ‘지탱하는 스포츠’가 럭비월드컵으로 나타난 셈이다. 특히나 과거 ‘대영제국’의 일원이 주로 참가하는 럭비대회에서의 선전은 다른 측면에서도 내셔널리즘을 자극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다양성’이란 점이 강조된 럭비는 대내외 선전용으로도 나쁘지 않은 소재였다. 물론 럭비를 즐기는 나라가 많지 않은 점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올림픽에 아베 정권이 걸던 기대는 당연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정부가 주도한 정책적 지원의 결과는 확연히 메달로 나타났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일본은 13종목에서 메달을 땄다(2014 소치 8종목, 2010 밴쿠버 5종목). 앞서 언급한 과거 동계 올림픽의 낮은 성적이 완전히 반등한 결과였다. 하계 올림픽에서도 성적은 점점 개선돼 왔고, 그 정점은 이번 도쿄 올림픽이었다(이어야 했다). 아베 총리가 끝까지 올림픽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코로나의 만연으로 당초 의도했던 선수들의 선전을 통한 ‘국위선양’과 ‘부흥 어필’은 이미 색이 바랬다. ‘코로나에 대한 승리선언’의 장으로 만들겠다던 지난해 선언도 실현가능성은 안타깝지만 0에 가깝다. 다만 도쿄 올림픽에서 확인될 엘리트 체육의 ‘저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겠다. 선수들의 메달이 주는 의미는 각 나라마다 다르겠으나 이번 대회가 일본 국민들에게 얼마나 힘을 줄 수 있을까. 델타변이로 확산되는 코로나(각지에서 최고치를 경신중이다)를 선수들의 선전으로 상쇄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