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게이트볼의 대 혁신! 장성 백양사 스님들이 나섰다 첨부파일

경기 중 스님들이 통과 터치를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양손을 합장하고 긴장 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에 자라한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토진)스님이 사찰 스님들의 건강과 지역 주민들과의 화합을 위해 장성군 게이트볼협회에 문을 두드렸다.
이들은 진정하고 성실한 불공(기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건강이 필수라는 생각에 게이트볼에 합세해 건강도 챙기고 주민과 소통하고 게이트볼 동호인들과도 친목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 듯 기도 역시 건강 유지가 필수다.”라며 열운을 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장성군게이트볼협회 장지영 사무장이 군내 초등학교 학생들의 게이트볼 특별활동시간에 교육을 마치고 백양사를 나들이 중 주지(토진)스님을 만나 게이트볼을 소개하면서 좋은 인연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후 40대 젊은 나이의 스님 10여 명이 게이트볼에 흥미를 느껴 매일 빠짐없이 맹연습에 돌입했다.
급기야 주지(토진)스님의 후원으로 지난 25일부터 26일까지 (2일간) ‘제1회 북하면 정월 소원성취 게이트볼 축제’를 마련해 15개 팀이 참가해 면민들의 한 마당 잔치를 치렀다.
이 축제에는 유두석 장성군수, 장귀남(전라남도게이트볼협회)회장 등 지역 유지 20여 명이 참석하여 이들을 축하하며 치하했다.
유두석 장성군수는 축사에서 “장성군에 홍길동 축제부터 많은 축제가 있지만 오늘 같이 스님들과 주민들의 화합과 친목을 위하고 화기애애한 축제는 어느 축제보다 뜻 깊다.”고 치하 했다.
이어 장귀남 회장은 “게이트볼에 관심을 가져주신 백양사 주지토진 스님께 감사드린다.”며 “장성군민의 건강 100세를 위해 많은 게이트볼 인구와 구장 시설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백양사 팀으로 출전한 대표 스님(화진)은 “토진(주지)스님의 건유로 게이트볼을 배우고 보니 재미있고 건강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민들과 편안하게 소통이 잘 되는 등 여러 가지 이로운 점이 많다.”며 “그동안 어디에서나 일반 주민과 스님들이 가까운 접촉은 그렇게 쉽지는 않았고, 주민과 친밀해 진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는데 동호인으로 허물없이 지낼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고 “이제는 게이트볼을 시작한 만큼 승복을 평생 유니폼으로 삼고 기술은 물론 신체단련에 임할 것이다.”고 했다.
또한 폴란드에 국적을 둔 스님(36세, 선정)은 “이커~ 처음 보는 운동인데 경기에 매력을 느껴 너무 재미있어요!”라며 “이제 다른 지역 사찰로 자리를 옮겨도 그곳에서도 하고 싶다.”고 약간은 서툰 한국어로 말해 스님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게이트볼 보급에도 큰 기대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태권도의 유래를 보면 고려부터 내려온 택견(태권도)은 손보다 발을 더 많이 쓰는 무도의 성격으로 신라의 경주불국사의 ‘석굴암 금강역사상’이나 고구려 벽화 등 불상에서 기록이 나타나 듯 불교에서 먼저 건강을 위해 행해 왔던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전국 사찰에서 가장 먼저 게이트볼 운동을 시작한 고불총림 백양사 스님들 역시 불교계에 건전한 운동을 전파시키는 데에 선구자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장성군게이트볼협회 장 사무장은“게이트볼 경기 중 승부에 집착해 동호인 간에 가끔은 다툼이 있었으나 스님들이 입문 후 경기자(선수)들 간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요령을 터득해 웃고 즐기는 경기장으로 변했다.”며 “건강과 즐거움을 함께 챙기는 경기장으로 탈바꿈한 분위기 있는 모습은 타 지역에서도 꼭 본받아야 할 사례라고” 말해 장성군은 물론 전남 등 전국에 게이트볼의 발전과 전변확대가 이루어 질것으로 여겨진다.

게이트볼의 역사를 살펴보면:
게이트볼은 막대기(채, 스틱)로 공을 쳐서 관문(gate)을 통과시키는 경기이다. 고대로부터 막대기로 공을 치거나 게이트를 통과시키는 경기는 여러 나라에서 존재하였다. 중국의 추환, 한국의 격방, 서양의 골프나 크로케, 크리켓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격구나 서양의 폴로와 같이 말을 타고 관문(gate)을 통과시키는 방식도 있다.
게이트볼의 기원은 크로케(croquet)에서 찾을 수 있다. 크로케는 1300년대 남부 프랑스 농부들의 놀이에서 기원하였다고 한다. 이 놀이는 버드나무 가지를 구부려 철주문을 만들고, 양치기의 지팡이를 닮은 갈고리가 달린 나무망치를 가지고 공을 철주문 안으로 쳐서 통과시키는 놀이였다. 이러한 놀이를 프랑스에서는 페일메일(paille maille): 후에 펠멜(pall mall)로 불렸다. 이 놀이가 17세기 이태리와 스코트랜드 등 유럽 여러 나라에 전파되고 영국에서 크로케란 명칭으로 불려졌을 만큼 역사가 깊은 운동경기다.
크로케가 한국에 소개된 기록은 없으며, 일본에 소개된 것은 188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에 크로케는 소개된 것에 그칠 뿐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다시 크로케를 받아들인 것은 2차 대전의 패전 직후인 1947년 스즈끼 가즈노부(鈴木和信)에 의해 변형 보급되었다.
한국에 게이트볼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다. 1980년대 초반 경주, 대구, 부산 등지로 보급된 게이트볼은 ‘한?일 게이트볼 보급협력회’ 와 대구의 ‘오구협회’, ‘한국 게이트볼 보급회’, ‘한국 게이트볼 협회’등을 거쳐 1988년 올림픽경기대회 이후 일반 국민의 체육활동 참여열기가 고조되고, 국민건강 및 여가 선용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면서 민간 차원의 생활체육을 육성하고 건전한 체육문화를 창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1991년 출범하고 ‘생활체육전국게이트볼연합회’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발전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17개 시·도 협회와 시 군 구협회로 구성, 아시아 및 세계대회를 치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전국규모의 대회를 확대 개최하고 있다.
전국 게이트볼 인구는 60만 명 이상이 즐기는 생활체육 중심종목으로 성장 발전하고 있다.